어릴 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좋았다.
자기 발견, 남들과 다른 길, 그런 것들이 내 심장을 뛰게 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헤세의 『싯다르타』가 더 마음에 남는다.
싯다르타(우리가 아는 부처가 아니고 이 소설의 주인공)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의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난다. 수행길에 결국 부처를 만나 진리를 듣지만 배워서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없고 스스로 경험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속세로 나와 카말라란 여자를 만난다.
카말라는 장사를 배워보라고 부자 상인 한명을 소개해주는데 이때 상인이 싯다르타에게 할 줄 아는게 뭐냐고 물어보자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한다.
“나는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금식할 줄 안다.” 30대 중반에 싯다르타를 처음 읽었을 땐 이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사색이야 그럴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 두개는 어따 쓴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0년쯤 지난 지금은 조금 알것도 같다.
사색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지켜내는 힘이고, 기다림은 빨리빨리를 원하는 조급한 세상 속에서도 긴 호흡으로 버티는 힘, 금식은 끝없는 욕망과 소비를 절제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지 않을까?
결국 이 셋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율성과 독립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땐 『데미안』, 나이가 드니 『싯다르타』. 책은 그대로인데, 달라지는 건 결국 나다.

어릴 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좋았다.
자기 발견, 남들과 다른 길, 그런 것들이 내 심장을 뛰게 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헤세의 『싯다르타』가 더 마음에 남는다.
싯다르타(우리가 아는 부처가 아니고 이 소설의 주인공)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의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난다. 수행길에 결국 부처를 만나 진리를 듣지만 배워서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없고 스스로 경험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속세로 나와 카말라란 여자를 만난다.
카말라는 장사를 배워보라고 부자 상인 한명을 소개해주는데 이때 상인이 싯다르타에게 할 줄 아는게 뭐냐고 물어보자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한다.
“나는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금식할 줄 안다.” 30대 중반에 싯다르타를 처음 읽었을 땐 이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사색이야 그럴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 두개는 어따 쓴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0년쯤 지난 지금은 조금 알것도 같다.
사색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지켜내는 힘이고, 기다림은 빨리빨리를 원하는 조급한 세상 속에서도 긴 호흡으로 버티는 힘, 금식은 끝없는 욕망과 소비를 절제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지 않을까?
결국 이 셋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율성과 독립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땐 『데미안』, 나이가 드니 『싯다르타』. 책은 그대로인데, 달라지는 건 결국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