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글]창작은 결국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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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생각한 것

창작은 결국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 이슬아, 『창작과 농담』

『창작과 농담』 책 표지

처음에는 창작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쳤다.

음악가 황소윤과 장기하, 영화감독 김초희, 배우 강말금, 뮤지션 오혁, 그리고 김규진.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온 사람들과 이슬아가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은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어떻게 자기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책에 가까웠다. 인터뷰마다 하는 일도, 살아온 방식도 달랐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비슷한 질문이 남았다.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남들에게 보이는 나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황소윤 — 걱정 마 시스터

황소윤의 인터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정체성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실제의 나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더 커진다. 음악가 황소윤, 새소년의 황소윤, 누군가가 기대하는 이미지 속 황소윤이 한 사람 안에 겹쳐진다. 그런데 황소윤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봐야 하는지 계속 설명하려 하기보다 음악을 만든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나를 오해하는 사람 모두에게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대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만들고 보여줄 수는 있다. 창작은 자기소개보다 훨씬 긴 자기증명인지도 모르겠다. 창작이 언제나 영감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잘되지 않는 날에도 계속 시도하고, 작은 불씨라도 생길 때까지 무언가를 반복한다.

우리는 창작자를 보면 특별한 영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영감의 크기보다 계속 시도하는 태도일 때가 많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김규진 — 일과 사랑의 천재

자신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으로 소개하는 김규진의 인터뷰는 다른 방향에서 오래 남았다. 그의 이야기에는 사회적인 편견과 제약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결혼, 일과 삶의 형태를 꽤 구체적인 행동으로 만들어간다. 특히 좋았던 것은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게만 다루지 않는 태도였다. 유머가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이 자기 인생 전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기서 창작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꼭 음악이나 글, 그림을 만들어야만 창작일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일도 창작 아닐까. 주어진 것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과, 내가 원하는 모양에 맞게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가는 것은 꽤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김규진은 자기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압박 없이 오래 할 것인가

장기하 — 말 같은 노래, 노래 같은 말

장기하의 인터뷰에서는 의외로 단순한 태도가 오래 남았다. 창작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무언가를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일이 된다. 그러면 ‘하고 싶다’가 ‘해야 한다’로 바뀐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이전보다 나아져야 하고, 사람들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 장기하는 그런 압박에서 조금 물러난다. 안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자유가 다시 무언가를 만들게 한다. 이건 창작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많은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더 강한 의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지보다 힘을 빼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자유가 오히려 계속하게 만드는 것. 내가 하는 일들도 너무 잘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실패와 절망을 어떻게 농담으로 바꿀 것인가

강말금·김초희 — 절망에게 바치는 유머

개인적으로 『창작과 농담』이라는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인터뷰였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배우 강말금과 영화감독 김초희의 이야기에는 성공만큼이나 실패와 기다림이 많이 나온다.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 늦어지는 성공, 자신이 선택한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 그런데 두 사람은 그것을 지나치게 비장하게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농담을 한다.

여기서 농담은 단순히 웃기는 말이 아니었다. 내 삶의 절망과 잠깐 거리를 두는 방법에 가까웠다. 절망 속에 완전히 들어가 있으면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으면, 어느 순간 그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고 농담으로 옮길 수도 있다.

농담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견디기 위해 사람이 만들어낸 기술에 가까운 게 아닐까. 창작도 비슷하다. 괴로운 일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옮겨가는 힘이 창작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한번 직접 보는것도 추천. 속된말로 뻘하게 재미나는 영화!)

결국 나만의 멋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혁 — 멋과 미에 관하여

오혁의 인터뷰에서는 ‘멋’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했다. 멋있는 옷을 입는 것, 세련된 음악을 하는 것,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갖는 것.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멋은 외형보다 내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에서 시작된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지금 무엇을 계속 질문하고 있는지도 그 안에 들어간다. 그 질문들이 쌓이고 난 뒤에야 한 사람의 음악이나 옷, 말투나 작업에 어떤 분위기가 생긴다. 그래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스타일을 만들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오래 살아온 결과가 스타일이 되는 것 아닐까.

오혁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사랑과 행복에 관한 질문으로 향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결국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책을 덮고 나니 다섯 인터뷰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

황소윤은 계속 만드는 쪽을 택한다. 김규진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제로 만들어간다. 장기하는 힘을 빼고 오래 지속하는 법을 보여준다. 강말금과 김초희는 절망을 농담으로 바꾸고, 오혁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한다. 그래서 『창작과 농담』에서 말하는 창작은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아도, 음악을 만들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간다.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취향을 만들고, 하루를 보내는 방식을 만든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실패도 하고, 오해도 받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창작 옆에는 농담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을 너무 심각하게만 바라보지 않도록 잠깐 거리를 두는 일. 실패한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다음 날 다시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게 해주는 힘. 이 책을 읽으며 창작에 대해 배우려고 했는데, 오히려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창작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기보다, 주어진 삶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는 능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기 삶을 그렇게 계속 고쳐 쓰는 사람에게는 가끔 농담이 필요하다. (매사에 진지한 나에게는 더욱 더 농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