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글박완서 에세이집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에서 만난 문구

요즘 박완서님의 에세이 모음집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를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어치우기엔 아까워서, 문장 사이사이에 자꾸 멈추게 됩니다.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조금 덜 바빠져야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 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한가하고 싶다.”

읽는 순간, ’아, 내가 요즘 원하는 상태가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자주 두 극단을 오갑니다. 숨이 찰 만큼 바쁘거나, 방향을 잃을 만큼 느슨하거나. 바쁠 때는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고, 한가해지면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결국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습니다. 일정표를 빼곡히 채우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또 다른 약속을 잡습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제가 원하는 건 그 중간 어딘가였습니다.

모든 시간을 생산성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렇다고 하루 종일 공상만 하며 현실을 미루는 상태도 아닌, 가끔은 아무 쓸모없는 상상을 해도 괜찮은 여백이 있는 삶.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한가함.’

이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꿈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꿈에 잠식당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 현실을 도망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짓눌리지 않는 균형.

생각해보면 늘 무언가를 기획하고, 모임을 열고,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습니다. 그 덕분에 성장했고,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죄책감 없이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 목적 없는 산책, 쓸모없는 메모 몇 줄을 적는 오후.

우리는 효율을 사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자원이고, 성과는 증명이고, 속도는 미덕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만 굴러가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쁨의 틈에서, 가장 따뜻한 연결은 일정 사이의 공백에서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 일정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더 넣을 것을 고민하는 대신, 무엇을 덜어낼지 생각합니다. “이 일은 정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가?” “이 선택은 설렘에서 출발했는가, 아니면 불안에서 시작되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조금 덜 바빠지는 것.

그건 게을러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조절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한가해 길을 잃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바빠 나를 잃지 않도록.

가끔 가끔 단꿈을 꿀 수 있을 만큼만. 그 단꿈이 다시 현실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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